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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

OOO은 인생과 같다 ... 고사리 꺾기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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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귀포 삼춘들이 말하길 올해 고사리 장마는 시시하게 지나갔다고 한다. 매년 4~5월에는 고사리 장마로 안개 끼고 비 오고 습한 날씨가 계속되는데 아직 육지것인 내가 보기에도 4~5월 날씨가 너무 좋았다. 5월 중순이 지난 지금 매일 한라산이 쨍하게 보일 정도로 날씨가 좋다. 

 

지난주 비가 한차례 내리고난 주말에 마지막 고사리를 꺾었다. 고사리는 먹는 것도 꺾는 것도 관심 없지만 제주에 내려오신 부모님이 제주도에서 제일 좋아하는 일이 고사리 꺾는 일이라 하루 걸러 고사리꾼이 됐었다. 덕분에 매일 모시고 다니면서 고사리 꺾고 식사 대접해드리고 하느라 포스팅할 짬도 없었다. 

 

제주에 살다보니 누가 온다고 하면 반갑기도 하고 부담스럽기도 하다. 5월에는 부모님 포함 지인들까지 오는 바람에 매일이 바쁜 날이었고 매일 맛집을 찾아가야 하는 스케줄이기도 했다. 2주간 만땅주유를 3번이나 할 정도로 이동거리도 많았고 매일 다른 팀들과 4일 저녁을 함께해서 체력적으로도 힘들었다. 

 

나이 든 선배들이 조언이랍시고 온갖 스포츠와 각가지 상황을 빚대서 인생을 말한다. 

 

마라톤은 인생이야... 야구는 인생이야... 축구는 인생이야... 골프는 인생이야... 등등등

 

<자연이 준 선물 - 제주 고사리>

고사리 꺾는 일에 취미도 관심도 없었는데 꺾다 보니 꼰대 선배들 같은 생각이 들었다. 


1. 다 피어버린 것이 아니라 이제막 땅에서 나온 것을 꺾어야 하는데 고사리가 있을 것 같은 곳에서 언뜻 보면 잘 보이지 않는다. 주위를 잘 살피다 보면 하나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꺾으려고 손을 내밀면 주변에 여러 개가 더 보일 때가 많다. 

볕이 내려쬐는 날엔 위에서 내려다 보면 잘 안 보이고 허리를 숙여서 옆으로 봐야 잘 보인다. 

 

- 하나가 보인다고 그것만 볼 것이 아니라 주의깊게 주변을 살피다 보면 여러 개가 보인다. 

 

2. 지나갈 때는 분명 없었는데 돌아서면 보이기도 한다. 몇번을 반복해서 주변을 왔다 갔다 했는데 귀신 들린 것처럼 "이걸 왜 못 봤지?" 할 때가 있다. 

 

- 앞으로만 갈 것이 아니라 가끔씩은 뒤도 돌아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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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가시 덤불로 덮인 곳이나 사람들 발자국이 없는 곳에는 대물들이 있다. 아마추어다 보니 선수들이 누비고 간 발자국 난 곳을 따라다니는데 그러다 보면 실제로 얻는 것이 신통치 않다. 그런데 발자국 옆에 가시덤불을 들춰보다 보면 지팡이처럼 쭉 뻗은 고사리를 볼 수 있다. 이게 정말 고사리야 할 정도로 미끈하게 뻗은 대물들이다. 

 

- 남들 발자취만 쫓다 보면 큰 이익을 볼 수 없다. 때로는 리스크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한다. 

 

4. 허리를 숙이고 고사리를 꺾다보면 방향을 잃기 쉽다. 고사리 꺾는 재미에 아래만 쳐다보고 가다 보면 길을 잃기 쉽다. 네모 반듯한 밭에서 꺾는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의 풀숲을 헤매면서 꺾어야 하는데 중간중간 위치 확인을 하지 않으면 일행과 헤어지게 된다. 실제로 아버지를 찾아 한 시간이나 찾아 헤맸다. 

 

- 눈앞에 과실만 쫓다보면 방향을 잃는다. 중간중간 고개를 들어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 살펴야 한다. 

 

<고사리 실종사고 주의판 - 출처:헤드라인제주>

 

5. 연하게 올라온 고사리는 톡톡 소리를 내며 쉽게 꺾기 때문에 재미가 있다. 굵은녀석도 나온 지 얼마 안 된 고사리는 '툭'하고 쉽게 꺾어진다. 그 재미에 빠지다 보니 업자도 아닌데 고사리 양이 많아진다. 고사리는 나물이나 육개장 같은 음식 재료로 쓰이지만 그리 자주 먹는 음식은 아닌 듯하다. 아무리 자연이 준 공짜라지만 먹을 만큼만 꺾어야지 욕심껏 꺾다 보니 삶고 말리고, 일만 많아졌다. 

 

- 과유블급. 생계가 아니고 식구들 먹을 요량이면 하루 이틀 부지런하면 일 년 두고 먹을 정도는 된다. 많으면 나누자. 과정은 재미있었으니까 나눠먹자. 


고사리 꺾는 재미에 내려오시는 부모님 모시고 정말 원없이 고사리를 꺾으며 자주들은 얘기가 '이제 언제 또 오겠어' 라는 소리였다. 아마도 본인들도 여기저기 아프고 점점 체력도 달리니 점점 자신감도 떨어지는 것 같다. 자식들 키우고 살면서 인생에 노을이 지는 부모가 서글프면서도 이렇게라도 재미있어하시니 열심히 모시고 다녔다. 예전에 나이 든 부모가 재미로 취미로 농사짓는 것에 마지못해 도와 드렸는데 이제는 하고 싶어도 못하니 내 미래도 저렇게 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각자 자신의 경험에 인생철학 가져다 붙이는 선배들 말에 그리 귀기울이지 않았는데 나도 그렇게 되는 것 같다. 고사리 꺾다 보니 자연에게 또 한수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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